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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키스공간/일상기록

나이 든 형님들은 아직 일한다

2015년 10월, 처음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이던 날이 아직도 선하다.
그때만 해도 복도 어딘가에서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

"나이 들면 머리가 굳어서, 팽팽 돌아가는 젊은 친구들한테 일자리 뺏긴다."

프로그래머의 수명은 짧다는 괴담. 50도 안 돼서 퇴직한다는 말.
신입이던 나는 그걸 반쯤 믿으며, 40대·50대 형님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나이가 되면 나도 은퇴하겠지.'

그런데 그 형님들이,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다.

이유는 단순히 "안 잘려서"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도메인 지식, 장애를 예측하는 직관, 팀을 읽는 감각 — 그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대체되지 않았다.
다만 한편으로는, 업계의 신입 채용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I가 몸 쓰는 노동부터 대체할 거라는 막연한 예측은 빗나갔다.
대화형 AI가 먼저 치고 올라오며, 슬그머니 주니어 프로그래머들의 자리를 잠식해 들어갔다.

예전엔 1시간, 길면 2~4시간이 걸리던 단일 기능 구현. 이제 AI는 초안을 순식간에 뽑아낸다.
물론 그 결과물을 검토하고, 맥락에 맞게 통합하고, 엣지 케이스를 잡아내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 전체를 합쳐도, 시니어 혼자서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된 건 분명하다.

멀티스레드 프로그래밍 같은 복잡한 영역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요즘 Claude를 쓰면서 그마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긴 하지만, 완전한 대체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

결국엔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사람 하나면 충분한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가설이지만, 무섭도록 빠른 변화 속에서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결국, 나는 이 일이 좋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AI가 아무리 빠르게 따라와도 — 그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 형님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는 진짜 이유가 어쩌면 거기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오래오래 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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